꿈은 이루어진다’. 이 말은 월드컵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1989년 3월 혈혈단신으로 북한을 전격 방문해 한반도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늦봄 문익환 목사의 꿈은 조금씩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나는 말로 하는 대화가 아니라 가슴과 눈으로 하는 대화를 하러 왔습니다. 한편이 이기고 한편이 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길을 찾아왔습니다”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해 낭독한 그의 도착성명은 그로부터 11년 뒤인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교류사업,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한민족이 가져야 한다는 햇볕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문목사의 방북은 남쪽에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다. 민간인의 신분으로 정부의 허락없이 북한을 방문하고 통일을 공개적으로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익환은 1918년 6월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안중근이 사격연습을 하고 이동휘가 드나들던 곳이다. 그의 집안은 기독교 가정이었고 그 신앙은 민족주의에 닿아있었다. 문목사는 어린시절 시인 윤동주와 죽마고우였고 그 자신이 하늘과 별과 맑은 마음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이런 성장 내력은 그의 일생을 결정지었다.
평양 숭실학교 5학년 시절,신사참배에 반대하는 동맹휴학에 가담했다가 학교를 중퇴하고 도쿄 일본신학교에선 학병을 거부하고 만주 봉천신학교로 전학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의 삶은 평탄한 목회자이자 신학자의 길이었다. 그는 해방 후 배영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한신대학과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수업을 받았다. 한신대와 연세대에서 구약을 가르치며 한빛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그는 히브리어 성경을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공동번역 작업에 참여하면서 구약의 시편에 깊은 감명을 받고 시인이 됐다.
문익환 목사를 다시 사회운동에 뛰어들게 했던 것은 박정희 정권 당시 신학의 동지이며 절친한 친구였던 장준하가 의문사를 당하면서부터였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에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함세웅 문정현 등과 함께 참여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6번에 걸친 투옥도 그를 꺾을 수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하면서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문목사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 깊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대답이 바로 방북이었다. 문목사는 통일이 앞당겨지면 민주화가 진전되고 그렇게 돼야 억울한 희생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목사는 열흘동안의 방북의 결과로 북한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 내용에는 남북한의 정치군사회담 추진,이산가족문제를 비롯해 교류와 접촉 등 현재 남북한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일들이 포함돼 있다. 물론 법적으로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성명이었지만 철벽과 같았던 분단체제의 벽을 넘어 통일의 꿈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문목사는 방북후 제3국으로 망명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귀국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공항에서 바로 구속,수감됐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문목사는 지난 94년 1월18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이제 보수교단의 목회자들도 앞다퉈 북한을 방문하고 있고 한국교회는 북한 지원에 대한 사회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장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2002년 정부는 문목사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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