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아동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있는 허름한 다가구주택. 그 집으로 이어진 가파른 계단 수십개를 오르면 창문 하나 달린 허름한 옥탑방이 나온다.
이곳에서 심민지(12) 민주(11)양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2년전 자매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뒤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아버지 역시 자매에게 이 방을 얻어 준 뒤 “돈을 많이 벌어올테니 기다려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처음 얼마동안 민지는 “하룻밤만 자면 오실거야”라며 밤마다 우는 동생을 달랬다. 동생을 달래다 껴안고 울며 보내기를 몇달.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매를 찾지않았다. 결국 자매는 ‘울지 않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다리겠다’고 서로에게 다짐했다. 이후 자매는 부모와 함께 살던 때를 기억하며 열심히 살기로 했다.
민지네 가족도 한때 남부럽지 않게 화목한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요리점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결혼기념일마다 어머니에게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하던 가게가 문을 닫아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으면서 어머니와 불화가 시작됐고 이혼하고 말았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둘만 남겨지자 시련이 닥쳐왔다. 둘만 남겨진지 6개월만에 요금미납으로 도시가스 공급이 끊겼다. 쌀과 반찬은 가까이 살았던 큰 아버지가 일주일에 한번씩 들러 사주기도 했지만 올초 큰 아버지네 가족이 지방으로 이사가면서 의지할 데도 없어졌다.
정부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집세 내기도 어렵다.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에서 몽땅 깎여 나간 지도 이미 오래됐다. 월세 25만원은 번번히 밀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집주인은 다행히 자매의 사정을 이해해 집세를 재촉하지않는다. 학교 급식비 내기도 빠듯하다. 급식비는 학교에 기초생활수급자 증명서를 제출하면 무료지만 민지는 “만약 선생님이 알게 되면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볼까봐 싫다”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민지 자매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 부모에 대해 물으면 엄마는 시골에 내려가 할머니 병간호를 하고 있고 아빠는 지방에서 일한다고 둘러대곤 한다.
이들 자매에게 가장 싫은 것은 운동회나 공개수업을 하는 날.친구들은 대부분 부모가 오지만 자매는 올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1년에 한번뿐인 생일이나 명절도 집밖에 나가지 않는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오히려 눈물만 날 뿐이다.
그러나 민지 자매는 부모를 미워하지 않는다. 민지는 “이혼하셨을 때는 미웠지만 지금은 이해해요. 형편이 안 좋아서 그렇게 된 거에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민주는 언니의 어두워진 얼굴을 가로 막으며 냉큼 “아빠가 만들어 준 간짜장과 탕수육이 가장 먹고 싶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자매는 언젠가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자매는 늦은 밤 계단에 발소리에 숨을 죽인다. ‘혹시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닐까’라는 기대감에…(02-980-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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