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원천봉쇄－진입시도… 욕설·비명 난무 ‘아수라장’
ㆍ박진 위원장 바리케이드 친채 1분만에 “땅 땅 땅”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 주변은 18일 아수라장이었다.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막기 위해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민주당·민주노동당 의원·보좌진들이 한나라당 의원·보좌관 및 국회 경위들과 한데 엉켜 극렬한 싸움을 벌이면서다. 해머와 망치, 전기톱, 소화기와 소방호스가 등장하고 욕설이 난무하는 ‘한 편의 활극’이 연출됐다. 한나라당의 독선이 빚어낸 6시간에 걸친 난투극이었다.

오전 8시20분 민주당 외통위 문학진 간사와 송영길 의원 등이 외통위 회의장 주변에 모였다. 와이셔츠 차림으로 줄지어 늘어 선 50여명의 경위들은 위원장실과 회의장 문을 모두 막고 “외통위 소속 의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며 제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오후 2시로 예정된) 회의가 지금 열리는 것도 아니잖아. 이런 경우가 어딨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회의장 안에는 전날 오후 회의장에 들어가 밤을 보냈던 황진하 간사를 비롯해 구상찬·이춘식·정몽준·정옥임·홍정욱 등 한나라당 소속 외통위원 10명이 일찌감치 들어가 있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보좌진과 당직자들을 불렀고, 순식간에 300명가량이 운집했다.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야당 측과 경위들의 밀고당기기가 반복됐다. 그러다 10시30분부터 출입구 문을 떼어내기 위한 해머, 망치, 정 등 ‘공구’들이 동원됐다.

멱살잡이와 욕설이 뒤섞인 가운데 11시20분쯤 출입구 왼쪽 문이 뜯겨졌다. 안쪽은 경위들이 소파, 책상, 의자 등 집기들로 바리케이드를 쌓아 야당 측 진입은 쉽지 않았다. 집기가 깨져 들려 나오면 회의장 안에 있는 경위들은 계속 새 집기를 쌓아올렸다. 11시58분 오른쪽 문도 떨어져 나갔다.

이 과정에서 회의장 앞 복도에 있던 한나라당 황영철·정양석 의원 등이 야당 측과 설전을 벌였고, “욕하지마, X새끼야” “저 자식이 죽으려고” 등 욕설이 쏟아졌다. 여성 직원들의 비명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낮 12시40분 민주당·민노당 의원들이 복도에서 간이 집회를 가졌다. “한나라당이 항복을 요구하지만 굴복하지 않을 것”(원혜영 원내대표), “국회가 청와대의 꼭두각시가 됐다. 한번 ‘맞짱’을 떠야 할 상황”(강기갑 대표)이라는 규탄이 이어졌다.

소강 상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회의시간이 임박하자 민주당은 전기톱을 동원, 바리케이드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열린 틈으로 소화전에서 끌어온 물을 퍼부었다. 한나라당은 회의장 안쪽에서 소화기를 뿌리며 방어에 나섰다. 몸 싸움 과정에 복도 유리문이 깨져 보좌관 3~4명의 손이 찢어졌다.

오후 2시 정각 회의장 안에서는 박진 외통위원장이 전체회의를 개의했다. 단 1분 만에 개의에서 FTA 비준동의안 상정까지 전광석화처럼 끝났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보좌진 호위 속에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회의장에서 “박정희 유신독재 이래 ‘날치기’를 하더라도 입장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처리한 적은 없었다”며 “상정은 원천무효임을 선언한다”고 고함쳤다. 외통위 개의 시간인 오후 2시에 맞춰 박선영 대변인과 함께 회의장에 왔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우리 당 외통위원들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준안을 상정 처리한 것은 말도 안된다”며 “분명히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민노당 이정희 의원은 회의장 탁자 위에 놓인 외통위 소속 의원들의 명패를 집어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가는지 보겠다”며 울부짖었다.

이 같은 사태에 대해 한나라당은 민주당 측을 상대로 “기물 파괴 및 폭력행위 등에 대해 문제삼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우리당 소속 외통위원의 정상적 직무를 막았다”며 박진 위원장과 국회 박계동 사무총장 등을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안홍욱·선근형기자>